바다 광야에 대한 선언
이사야 21장에 나오는 바다 광야는 바빌론을 가리킨다.
바다 광야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이사야 21:1
그런데 왜 '바다 광야'인가?
성경에서 광야는 사막과 같은 황무지를 가리킨다.
그래서 바다와 광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광야가 넓어서 바다처럼 '광활한'이란 관형어로 '바다 광야"이거나
아니면 망망대해에 혼자 표류한 누군가에게 바다가 사막과 같아서 '바다 광야'인 것도 아니다.
여기에 대한 간략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바다 광야” 일부 주석가들은 이사야 21:1에 나오는 “바다 광야[미드바르]”가 고대 바빌로니아의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매년 강둑을 범람할 때, 이 지역은 “바다 광야”가 된다. ]-insight-
바빌론의 지형적 특징대로 평소에는 광야이던 곳이 강물이 범람해 바다가 된다.
정말로 그래서 바다 광야 인가?
모순 화법
먼저 바다 광야란 말은 사전에 없다.
지리적인 지형을 가리키는 용어도 아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히브리어 원문은 '미드바르 얌'(Midbar-Yam)이다.
미드바르(Midbar): 광야, 사막
얌(Yam): 바다
서로 다른 모순된 단어를 결합시킨 히브리어를 직역으로 번역하니 '바다 광야'가 된 것이다.
'미드바르 얌'은 '광야 사막'인데 어감상 'wilderness of sea', 우리말로는 '바다 광야'가 됐다.
바다 광야가 실제하지 않기 때문에 친절하게 '해변의 광야'라고 이 부분을 번역한 번역판도 있다.
완전히 샛길로 빠진 번역이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이런 식의 화법이 있는지 조사해 봤다.
이것을 모순 화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런 예가 많이 있다.
"너는 살아있으나 죽은 것이다."
"너는 부자이지만 가난하다."
"눈먼 인도자"와 같은 표현들이 역설적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결합해 중요한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죽은 것과 같다.
너는 실제로 부자이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하다.
자신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인도하려 하고 있다.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빌론이 표면적으로는 풍요로운 바다와 같은 상황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건조하고 황량한 물 없는 사막과 같이 영적으로 황무지라는 것과 현재는 바다이지만 미래에 완전히 황폐된 사막과 같이 될 것이라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바다 광야인 것이다.
계시록 18장에 있는 큰 바빌론도 많은 물 위에 앉아 있지만 요한은 환상 가운데 광야에 있는 큰 바빌론을 본다.
환상 골짜기
그런데 이사야서를 보면 이와 유사한 단어를 또 발견하게 된다.
환상 골짜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이사야 22:1
환상 골짜기, 히브리어로 '게 하자욘'
이것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산이지 골짜기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기존 해설은 다음과 같다.
[“환상 골짜기에 대한 선언”은 고대 예루살렘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 도시는 상당히 높은 곳에 있지만, 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골짜기”와 비슷하다.] -insight-
앞선 바다 광야의 의미를 모르니 환상 골짜기의 의미도 알 리가 없다.
주위에 더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서 골짜기라고 한다.
우리가 언제 주위보다 낮은 산을 골짜기라고 불렀던가?
이것도 모순화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환상과 계시는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환상을 받는 위치는 높은 곳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도덕적 영적 상태는 저 아래 깊은 곳, 바닥에 있다.
따라서 대조적으로 그들을 골짜기로 묘사한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골짜기는 죽음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에는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표현이 나오는 바와 같다.
결 론
바다 광야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리적으로 유프라테스가 범람하는 유프라테스 남쪽 지형을 가리키는 말도,
해안가의 넓은 백사장 모래사막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겉과 속이 다른, 현재와 미래의 운명이 다른 바빌론을 가리키는 심판의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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