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야 올라가라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가던 중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그를 조롱하기 시작하는데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하고 아이들이 소리쳤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고
때마침 암곰 두마리가 나타나 모두 42명의 아이들을 찢어발겼다.
천만 탈모인들이 보면 대머리를 놀리는 것에 대한 이보다 더 통쾌한 처벌은 없을 테지만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은 성경에서 이 부분이 제일 이해가 안 된다고 하신다.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께서 어린이들이 철없이 하는 말을 두고서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처벌을 내리실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
이 점에 대해 설교가들과 성경 출판물들에서는 하나같이 하느님을 대표하는 자들에 대해
무례하게 구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에 대해서 가르치며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임명하신 종에 대한 여하한 불경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비행 소년들이 여호와의 예언자인 엘리사를 조롱했을 때 그분은 즉각적인 보응을 하셨다.]라고 설명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더해 42명의 아이들이 실제로 어린이들이 아니라 청소년쯤 되었고 42명이 무리지어 다니는 조폭이나 건달들이었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들에 대한 처벌의 정당함을 애써 설명하고자 하기도 한다.
성경의 기록을 해석하면서 해설을 덧붙인 것이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가르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올바른 이해는 무엇인가?
그러면 이제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먼저 아이들이 예언자인 엘리사에게 불경을 저지른 것도 하느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행동이라는 점도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을 잘 살펴보면 엘리사는 아이들을 죽이라거나 암곰이 나와서 그들을 멸해달라고 하거나 하는 그런 구체적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베델로 올라갔다. 그가 길을 올라가는데, 그 도시에서 나온 작은 소년들이 그를 조롱하며 그를 향하여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하고 계속 말하였다.
마침내 그는 뒤로 돌아서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였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그 아이들 마흔두 명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는 거기서 갈멜 산으로 갔다가,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다.
열왕기하 2:23~25
엘리사는 단지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저주했다.
이것은 엘리야가 그를 잡으러 온 50명의 군인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불태워 달라고 탄원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엘리사는 분명 구체적으로 아이들에 대해 저주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의 저주는 일반적인 저주였는데 그것은 악인들에게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한 저주였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의로운 사람들이 잘 될 거라는 축복도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저주와 축복은 우리가 빌어서 그렇게 된다기보다는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공의의 원칙에 따라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연로자들 부모들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합당한 존경심을 가지도록 가르치는데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심각한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주고 있다.
특히 나는 어렸을 때 부모 말을 듣지 않으면 까마귀가 눈을 쪼아 먹을 것이라는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다.(잠언 30: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기도 가운데서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그 땅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야고보 5:17
엘리야는 예언자이기도 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그가 기도하자 3년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았다.
이것은 엘리야가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힘으로 또는 그의 기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엘리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저주를 알고 있었고 불충실한 백성들에게 닥칠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엘리사도 하느님의 대표자에게 의도적으로 나타내는 불경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주했을 것이다.
하느님께 책임이 있는가?
하느님께서 아이들을 벌하려고 하셨다면 손쉬운 방법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벙어리로 만들거나 그들의 눈이 멀게 하거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때마침 암곰 두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곰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며 소란스럽거나 자극을 받아 놀랄 경우 그 자리를 피한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새끼를 가진 곰은 매우 사납게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미련한 자를 만나는 것보다는 새끼 잃은 곰을 만나는 것이 낫다.
잠언 17:12
성경에서도 여러 차례 새끼 잃은 곰이 얼마나 사나운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삼하 17:8, 호세아 13:8)
42명의 아이들이 떼 지어 엘리사를 조롱하고 떠드는 것은 분명 새끼를 데리고 있을 시기의 암곰들에게 몹시 자극이 되었을 것이며
그들이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으므로 암곰의 공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인위적으로 개입하신 것인가?
물론 이것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한다면 믿음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겠지만
하느님께서 이것을 가져오셨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를 조롱하고 학대하는 그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초래한 재난적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은 분명히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었다.(잠언 22:15)
특히 주위에 새끼를 가진 곰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는 아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로 인해 하느님이 무자비하다거나 사랑 많은 하느님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고 슬퍼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 분명 안타깝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학대하는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초래한
재난적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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