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종교를 물을 때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질문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나는 부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나를 믿습니다.
사람들마다 믿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이란 무엇을 가르키는 것인가?
FAITH
'믿는다'라는 영어 단어하면 제일 먼저 believe가 생각날 것이다.
그래서 명사형인 '믿음'은 belief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믿음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belief가 아니다.
영어로 믿음은 faith이다.
faith은 신뢰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기본적인 의미는 충실함이다.
그래서 영어로 faithful은 충실한, 지지하는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어로는 피스티스(πίστεως)이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모든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과 여러분이 나타내는 충실함(πίστεως) 때문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7
믿음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피스티스는 영어로는 faith으로 그대로 번역되지만 한국어로 번역될 때는 충실함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
충실함이라는 단어에 기본적으로 내포된 뜻은 복종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왕에게 또는 주인에게 신하가 또는 하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다.
주인이 자기 집안 일꾼들을 돌보도록 임명하여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누어 주게 한 충실하고(πιστὸς) 슬기로운 종은 과연 누구입니까?
마태 24:45
예수께서 말씀하신 충실한 종에서 '충실한'이라는 단어도 피스티스의 변화형이 쓰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복종하고 충실한 것이 과연 가능한가?
우리가 섬기는 주인에 대한 전적인 신뢰심과 충성심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란 전적으로 하느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께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군가 나는 나를 믿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신뢰하거나 어느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으며 복종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오직 그 사람만이 그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믿음의 본질
예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에 들어가셨을 때, 한 로마군 장교가 그분께 와서 자신의 병든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면서 그분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교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상관이 있고, 제 밑에도 군인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오고, 또 종에게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시며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이스라엘에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마태 8:7~10
장교는 예수께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장교가 하인의 병이 확실히 나을 것이라는 걸 100%믿었기 때문에 그의 믿음이 큰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장교는 군인이라서 위계 질서에 대한 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예수를 온전히 자신의 상사로 주인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분에게 질병을 포함해 모든 것에 대한 권위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인 것이다.
믿음의 아버지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 중 단연 으뜸가는 사람이며 믿음의 아버지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그분이 “아브라함아!” 하고 말씀하시자, 그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부디 너의 아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줄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창세기 22:1,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온전히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러한 무리한 명령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것은 맹신이거나 광신이 아니었다.
그는 하느님이 그런 요구를 하시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느님이 자신보다 더 큰 뜻을 가지고 계시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시는 분이며 이삭을 바치더라도 그를 부활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시험을 통해 증명되어 그는 의롭다고 온전히 충성스럽다고 승인되었다.
창조주,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의 주인이다.
믿음을 볼 수 있는가?
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실한 신하가 있는가?
상사에게 절대 복종하는 부하가 있는가?
상대에게 온전히 충실한 남녀들이 있는가?
자신이 믿는 절대자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복종할 수 있는가?
배신과 의심 그리고 불충실함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더는 그런 믿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또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음을 나타낼 유일한 대상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 한 분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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